<초점>‘녹용논란’ 법적판단 고려해야…

법원판결 땐 한방의료기관에 엄청난 후폭풍 불가피




주재승기자/jsju@koreamnews.com

한의계가 순탄치 않은 새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말 불쑥 튀어나온 녹용논쟁이 이제 겉잡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 듯하다. 녹용하면 인삼과 함께 일반인들이 ‘한방’의 대명사로 인식한다. 국민들은 녹용을 ‘보약’ 중 최고의 약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많은 한의사들은 ‘녹용→보약’ 개념보다는 허약한 면역력을 증진시킴으로써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약재로서 보다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녹용 논쟁의 발단은 한의사들이 주축이 돼 설립된 한의유통사업단이 유통하는 녹용 중 러시아에서 수입된 녹용의 명칭에서 비롯됐다. 흔히 ‘원용’이라고 일컬어지는 러시아녹용은 녹용 가운데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가격 또한 다른 나라 것보다 높게 형성돼있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녹용은 러시아, 중국, 뉴질랜드, 북미 등이 주류를 이룬다. 이 가운데 뉴질랜드산이 국내 녹용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러시아, 중국, 북미, 기타 국가의 녹용이 나머지 시장을 분할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전 발생한 사슴광우병 여파로 북미산 녹용(엘크)은 금수조치가 내려졌으며, 아직까지 수입금지가 풀리지 않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일선한의사가 “원용을 구입해 DNA검사를 실시했더니 엘크성분이 검출됐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한의유통사업단은 수출국인 고르노알타이공화국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공받아 “밀수 또는 사슴품종을 속이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이러는 사이 이 문제는 한의협의 한의사전용통신망인 akom과 일선한의사들의 카페인 ‘빈의협’ 등으로 옮겨지면서 확산됐고, 급기야 당사자간의 감정이 대립, 이제는 고소, 고발로 이어져 법적으로 시비를 가려야 할 처지가 됐다.

한의협은 지난해 자체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검증을 실시했으나,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대신 12월 1일 향후 한방의료기관에서 사용되는 녹용에 대해선 DNA검사를 거치도록 하는 제도개선방안을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난지금 이같은 시도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는 한의협의 공식입장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한의사간의 녹용논쟁은 감정대립에서 법적으로 확산됐고, 법원의 판결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지를 떠나 전체 한방의료기관에 또 한 차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몇 해 전 한 시민단체가 “한방의료기관에서 고가의 녹용을 조제해 나중에 확인해보니 값싼 녹용이 들어가 있었다”고 발표, 한의사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때문에 한의협에 대해 “이번 문제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한의협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재 녹용은 산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이 시장관행이다. 그건 앞서 지적된 것처럼 ‘산지→품종’이란 등식이 업계에 고착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관행이 ‘DNA검사’라는 과학기술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사기, 밀수 등의 의혹은 앞으로 법원이 판단할 사안이 됐다. 그러나 이 판결이 값비싼 녹용을 복용했던 소비자들의 환불을 요구하는 그런 사태로까지 진행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이를 계기로 소비자들이 녹용기피현상이 심화된다면?

녹용유통의 관행이 잘못됐다면 과감히 개선(제품별 가격책정 및 이를 위한 DNA검사 명문화 등)하려는 노력을 공개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모든 과정을 공론화해 관계기관이 늑장을 부리지 못하게 하는 지혜도 요구된다.

중금속은 모든 농산물에 포함돼있지만 한약재에서 검출됐다는 검사결과 또는 보도가 나가면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식품인지, 의약품인지, 그리고 정작 중요한 기준치이하 여부에 관계없이 한방의료기관은 한동안 몸살을 앓는다. 환자가 발길을 끊고, 이미 복용중인 한약을 환불해달라는 소비자도 있다.

한의협은 1만7000명의 한의사를 대표하는 법적단체이다. 때문에 전체 한의사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2006-02-12 20:4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