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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불우이웃 무료진료 40년 ''현대판 허준''



"성재한의원은 내 것이 아닙니다. 인천 만수동 불우노인 '가족'의 재산입니다."

40 여년간 인천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며 생활이 어려워 치료를 못 받는 노인이나 독거노인 등을 돕다 그들의 '영원한 친구'가 된 류석재(64) 원장은 4일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다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인천의 허준'으로 불리는 류 원장은 1941년, 인천시 송림동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다 10여년 전 별세한 유양수씨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의사가 꿈이었던 그는 어릴 적부터 부친에게서 돈 많이 버는 의사가 아닌 '인술을 펴는 의사'가 되라는 가르침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부친의 좌우명이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었어요. 주역(周易)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대목으로, 덕행을 많이 한 집안은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고 그 자손들이 덕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빚을 지면서도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었던 건 아버님의 가르침 때문이었어요."




그는 부친의 가르침과 가업을 이어 달라는 당부에 따라 진로를 의대에서 한의대로 바꿨다. 40년 전 경희대 한의대 전신인 동양의약대학을 졸업한 후 한의사가 된 그는 한동안 송림동에서 부친과 함께 환자들을 돌봤다. 어릴 때부터 봉사 정신이 몸에 밴 그는 부친의 가르침을 받들어 기왕 의사 생활을 할 바엔 허준 선생처럼 어려운 지역에서 병들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고 결심, 22년 전 인천에서는 '달동네'에 속하던 만수동으로 병원을 이전했다.




그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병원을 지을 때 일반병실과 독거노인 등 불우 이웃을 진료하는 특수병실을 4대 6 비율로 했다. 무료 진료 노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에서다. 그래서 류 원장은 불우 노인 환자들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내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예나 지금이나 하루에 200여명의 환자를 보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무료로 진료받는 노인들이에요. 그들이 마음 편하게 진료를 받고 밝은 모습으로 나갈 때 큰 보람을 느껴요."




남 몰래 좋은 일을 하면 하늘도 감동하는 법. 그의 이 같은 선행은 환자들과 그 자녀들을 통해 입소문을 탔다. 이 같은 사회봉사 활동을 인정받아 그는 1987년 대통령상을 수상한 데 이어 92년 인천시민봉사대상, 대한적십자사 봉사대상, 2000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1만시간 봉사상 등을 받았다.




그의 '나눔의 삶'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50여년 동안 대한적십자사 봉사회원(현재 대한적십자사 전국 봉사회 부의장 및 인천지사 상임위원)으로 활동해 적십자사총재 표창과 공로패를 5회나 수상했다. 홀트아동복지회 평생회원으로 활동해 공로패 등도 받았다. 이 밖에 봉사명예직은 일일이 밝힐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불우 노인들을 영원한 친구로 생각하고 살기를 원한다. "젊은 시절에는 돈을 좀 벌어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겠다 싶어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돈 버는 일보다 돈 없고 자식 없는 병든 노인들의 친구가 돼 소일하고 있어요."




인터뷰 중에 진료실에서 침을 맞던 한 환자가 말했다. "여기 대기 중인 노인 10여명은 모두 원장한테 무료 침을 맞으러 온 사람들이에요. 지금도 매일 100여명이 무료진료를 받으러 와요. 그래서 우리는 원장 선생님을 부모나 친구, 가족처럼 생각해요."




87 년 선행시민으로 선정돼 대통령표창을 받은 류 원장이 상금 100만원으로 쌀을 사 남동구에 사는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그는 귀띔했다.




류 원장의 환자 치료법은 독특하다. 기자가 이날 류 원장을 찾았을 때, 노인 10여명이 진료실에서 웃으며 손뼉을 치고 동요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치료의 한 방법이겠지만 한의원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류 원장은 "무료로 진료받으러 온 노인 환자 대부분이 저소득층이고 자녀들로부터 거의 부양을 못 받는 노인들이어서 기가 많이 죽어 있어요. 그래서 기를 살려 주려고 '손뼉을, 손뼉을 칩시다'와 '박장대소 합시다' 율동을 1∼2분간가량 한 뒤 진료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법을 쓴 후 노인환자들의 사기가 몰라 보게 좋아졌어요. 우선 그들이 당당해진겁니다. 그러다 보니 치료 효과도 빨라요. 나 같은 사람이 노인심리학 박사를 받아야 하는 데…(웃음)"




10 여년 전부터 류 원장을 찾는 사람들은 인천 지역 사람들만이 아니다. 강원 지역은 물론 충청, 호남, 제주도에서까지 올라와 치료를 받는다. 강원도 삼척에서 왔다는 이재희(72) 할머니는 "류 원장은 돈을 벌어 우리같이 어려운 노인들한테 다 써버려 지금은 돈이 없어요. 이 병원 건물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지었는데 아직까지도 못 갚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봉사 활동을 도와준 가족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나는 집사람을 반려자라기보다는 평생 동지라고 생각해요. 아내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봉사 활동을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들들도 고맙게 생각해요. "




40 여년간 그의 손을 거쳐간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성경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어요. 내 자랑을 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아마도 수십만명은 되지 않을까요. 그동안 해온 일을 얘기하고 보니 부끄러워집니다."




류 원장은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침술 연구에 매달렸다고 한다.




"수년간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의 침술과 침뜸을 연구·비교해 봤어요. 중국 침은 아프고, 일본 침은 너무 약해요. 우리 것이 효과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우리의 전통 한의술을 해외에 널리 알려야 합니다. 21세기 의료 경쟁에서 침술과 침뜸은 단연 최고입니다."




그는 무료진료 외에도 15년 전부터 한 해에 두 번, 즉 봄가을에 관광버스를 대절해 '효 관광'과 '경노잔치'를 펴고 있다. 지난해 봄에는 관광버스 12대를 대절해 지역 노인 500여명을 관광시켜 줬다.




"개원과 함께 무료 진료를 병행하면서 지금은 돈 버는 일이 뒷전이 됐어요. 억만금을 주고도 못 배울 인생의 진리인 '남을 위해 나누는 삶'을 배웠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몸이 아파도 쉬질 못해요. 멀리서 치료 받기 위해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류 원장의 소원은 지역 내에 적당한 부지를 사 노인대학을 짓는 것이다. 만수동으로 병원을 이전할 때 자신과 가족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살아오다 병든 노인들에게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치료해주고 여가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다.




"이젠 나도 늙었어요. 허공처럼 빈 마음으로, 미풍처럼 걸림이 없이 봉사하며 살다 가는 것이 남은 인생의 바람입니다."




박석규 기자 skpark@segye.com



[2006-12-07 1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