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이땅의 서정과 풍경
화사한 꽃길따라 피는 재첩밭(3)
간밤에 흩뿌린 달디단 봄비가 잠자던 풀싹을 깨우고, 섬진강을 따라 난 하
동 들판을 한껏 푸르게 물들여 놓았다. 자리산 얕은 산자락에는 흐드러지게
핀 매화가, 길가에는 폭죽을 터뜨린 듯 벚꽃 망울이 부풀어 하동 포구 80리
가 온통 화사한 꽃길 물길이다. 이때쯤이면 섬진강 아랫자락에 어김없이 등
장하는 것이 있으니, 재첩을 잡는 풍경이다. 진안과 장수에서 내리기 시작한
섬진강은 곡성과 구례를 차례로 거쳐 하동에 와서는 화개골짜기의 물을 다
모아 비로소 물 깊이와 폭을 더해 강다운 참모습을 드러내는데, 바로 강 폭
이 넓어지는 이곳이 재첩밭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과거 부산에서 "재칫국 사이소"하며 새벽 골목길을 누비던 재첩국 장수의
살가운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재첩국의 시원한 맛 또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낙동강의 오염이 부산에서 재첩을 떠나 보냈고, 재첩국 장수
의 살가운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이 땅에서 재첩이 나는 곳은 섬진강을 낀 강진과 송지호를 낀 강원도
고성, 섬진강을 낀 하동과 광양이 고작인데, 아무래도 재첩하면 이제는 섬진
강 재첩이 으뜸이다. 섬진강에서 본격적으로 재첩을 잡기 시작하는 것은 보
통 꽃길이 열리기 시작하는 3월 말쯤으로, 이때쯤이면 섬진강에도 울긋불긋
사람꽃이 피어난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썰물 때를 기다려 강물 위에 함지를 띄워놓
고 갈퀴(거리니)로 강바닥을 훑는 손재첩잡이를 했지만, 요즘에는 꽤 많은 사
람들이 물때와 상관없이 배를 띄워 바닥을 훑어 올리고 있다. 이제 손재첩잡
이는 배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수단이 된 셈인데, 섬진강 하구를 낀 마을
의 아낙들에게는 그나마 이것이 소중한 벌이가 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들
의 벌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중국산 재첩과 양식 재첩이 바로 그것
이다. 그렇지 않아도 섬진강 재첩은 그 양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하동 읍내
의 식당이나 재첩 가공점 등에서는 싸구려 중국산이나 양식 재첩을 쓰는 곳
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이래저래 손재첩잡이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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