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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527년 전 한의학 되살린 백초당 한약방
     2009-03-04 오후 5:49:50   
     관리자   2389

[뉴스메이커] 527년 전 한의학 되살린 백초당 한약방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

[한방]527년 전 한의학 되살린 백초당 한약방
 
대구한약협회 신전휘 회장·아들 용욱씨, 조선 3대의서 ‘향약집성방’증보판 발간

17년 간의 노고 끝에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 를 집대성한 신전휘 회장은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라고 감회를 밝혔다.
대구 중구 약령시보존위원회 이사장을 지냈던 신전휘(65·백초당한약방) 대구한약협회 회장과 아들 용욱씨(34) 부자(父子)가 무려 17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책(‘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 계명대출판부)을 펴냈다. ‘의방유치’ ‘동의보감’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의서 중 하나인 ‘향약집성방’이 그림과 사진으로 현대적 의서로 재탄생한 것이다. 증보판 형태의 ‘향약집성방’ 발간은 527년 만의 일이다. ‘향약집성방’ 증보판 발간 사업은 조선 성종의 어명으로 전해지고 있다.

향약이란 수입약재에 대한 국내산 약재를 통칭하는 말로 국내에서 자생하지 않는 기원식물에서 유래한 약재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동의보감’ 탄생보다 200여 년 앞선 1433년(세종 15년) ‘향약집성방’이 출간되었다. 1479년(조선 성종 10년) 한양 승지(承旨) 이경동(李瓊仝)이 백성들이 국산 약초를 쉽게 찾아 이용할 수 있도록 ‘향약집성방’이라는 책을 펴냈으나 약초의 이름만 전할 뿐 생김새를 알 수 없어 일반 백성이 구하기 어렵다며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이에 성종이 그림을 곁들인 알기 쉬운 ‘향약집성방’을 만들 것을 지시했으나 이후 사료에서 그 책이 발간되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약초 360여 종 사진자료 만들어
그후 대구 약전골목에서 어명은 마침내 실현됐다. 신전휘 회장은 "1990년 한약박물관에 소장할 사료를 수집하던 중 향약집성방이 유명 의서인데도 후속 연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책에 실린 약초를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이 책에 나오는 약초 360여 종에 대한 사진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향약집성방에 나오는 약재류를 모두 찾아내 그림보다 더 정확한 사진을 찍고, 현대 한의학에서 확인된 각 약재류의 효능과 한약으로의 제조방법, 복용시 주의사항 등까지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 탄생한 것이다. "세종 때에는 백성들이 비싼 중국 약재를 수입해 병을 고쳐야 했습니다. 세종 임금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우리나라에서 나는 약초를 어떤 백성들이라도 알 수 있게 책으로 알려주라’며 향약집성방을 만들었죠. 하지만 그림 없이 글만으로 어찌 백성들이 약재류를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17년 전 1990년, 어려운 한자가 아닌 누구나 볼 수 있게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라고 지난날을 술회했다.

이번 증보판이 국내외 한의학과 한약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영문으로도 펴낼 예정이다. 신전휘 회장과 아들 용욱씨.
‘현대판 향약집성방’은 누구든지 약초를 쉽게 식별하기 위해 한 종류의 약초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진을 모두 담아냈다. 약초의 경우, 전초(어린약초)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이 피고, 지는 등 모습이 변하니 어떤 계절에 찾아나서든 이 책만 들면 모든 약초를 식별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다. 약초 뿌리, 열매 사진과 약재로 가공된 모습도 함께 넣어 한 종류의 약초마다 모두 6장의 사진이 붙어 있다. 약초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식물의 성장과 특성을 살려 1800여 장의 사진을 담고 쉬운 말로 약초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에는 세월이 흐르면서 분화(예를 들어 창포라는 약초는 창포 외에 최근에는 백창포도 약초류로 인정)된 약초 등 원본에는 360종류에서 추가된 20여 종에 대한 소개도 곁들여져 있어 500년 전 약초와 현재의 약초 상황을 비교 탐색해볼 수 있는 귀한 지식까지 담았다.

중국 수십차례·백두산 5번 올라
신전휘 회장은 "오동나무 재질의 나막신 코 부분도 잘라내 약재(가슴이 아프고 뻐근할 때 효험)로 썼고 대나무 패랭이(정신질환에 효험) 등까지 약재입니다. 일반적으로 백리만 떨어져도 풍속이 같지 않으며 천리가 떨어지면 풍토가 다르고 풀과 나무도 각기 지역 습성에 맞게 나며, 사람들의 음식과 생활풍습도 각기 다릅니다. 그래서 옛날 성인들은 여러 풀의 맛을 보아 약을 만들어 사방의 습성에 맞게 병을 치료했던 것입니다”라며 민간요법의 중요성도 설명하였다.

‘집착 없이는 해탈도 없다’고 했던가. 신 회장의 17년 간 노력의 결실이 빛을 보기까지는 끊임없는 연구와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 보이지 않는 희생이 뒤따랐다. 평생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제주도 10여 차례, 울릉도 4차례 등 섬지역도 마다 않고 약재류 사진을 찍으러 다녔으며 향약집성방에 나오지만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는 약재류는 중국까지 가서 찾아다녔다. 1988년부터 수십 차례 중국을 찾으며 백두산에도 다섯 번이나 올랐다. 오로지 약초를 찾아 험난한 지형을 오르고 또 오르며 여름에는 뱀, 가을에는 벌에 무수히 위협받은 건 말할 것도 없다.

527년 만에 나온 ‘향약집성방’ 증보판.
‘17년 동안 제작비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라는 물음에 "헤아려 보지 않아 모르겠는데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하는 비싼 수업료를 냈습니다”라고 하면서도 뿌듯해 했다. "약재류를 찾아다니는 것도 힘들었지만 500여 년 세월 동안 언어가 심하게 변했기 때문에 향약집성방 원본에 있는 한자어 약재류 이름과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향약집성방 약재류 이름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동의보감, 제중신편, 방약합편 등 책이 출간되면서 같은 약재류가 다른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어 문헌을 찾으며 고증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죠. 경희대 한약학과 박사인 아들(용욱)이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책을 집필하며 ‘산 넘어 산을 위해 또 가자’고 자신을 채찍질했다는 신 회장은 이 책의 출간으로 350년 역사의 대구 약전골목이 다시 한 번 중국, 일본과 전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곧 출간될 ‘사진으로 보는 우리 약초 바르게 알기’(계명대출판사)는 영문으로도 번역, 세계에 우리 한약의 우수성을 알리는 작업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신 회장은 "약을 찾아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찾아 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나라 안에서 나는 구하기 쉬운 약으로 병을 고치는 데야 말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런 것을 모르는 것이 애석합니다”라고 토로했다. 한편 그는 ‘남등근’이라는 한 종류를 끝내 찾아내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워 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이란 말이 있다. 자신의 대에 다 이루지 못한 것은 자식이, 또 그 손자가 대를 이어가며 5000년 역사의 한의학이 계승, 발전되기를 소망한다며 말을 맺었다.

2007년 2월 21일 거행된 대구한의대 제22회 학위수여식에서 백초당한약방 신전휘 회장은 명예한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번 학위는 신전휘 대구한약협회 회장의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 발간이 한의학 발전에 끼친 영향을 인정받아 수여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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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크리스천 CEO 대성당 한약방 이종원대표